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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병어한 작성일25-09-22 19:59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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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생각하기도 했다. 작은 창밖으로 하늘과 구름과 바다와 섬들이 지나가고 한쪽 개인회생 햇살론 눈을 살짝 감은 언니는 마치 함께 여행하듯 동영상에 담기는 중이었다. 예전에 나도 그랬었다. 어디에 가든 언니와 함께 여행하는 사진을 찍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기차에서, 비행기에서. 그것이 우리들에겐 일종의 예절이었다. 언니와 함께하는 우리 예절. 그러나 그 일 이후로 언니의 사진을 혼밥하는 식당에서도 꺼낼 수 없었다. 나는 해맑게 웃으며 포카를 환수수료 들고 인증하는 친구를 마냥 부러워 한참 바라봤다. 열 명 남짓 탈 수 있는 경비행기에 두 가족이 탔다. 그 친구는 중국인이었다. 아무래도 외국인이니까 별로 상관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외국 팬덤은 가끔 정말로 다른 길을 간다. 가족과 여행하기로 한 건 나로선 정말 용기를 낸 선택이었다. 가족이라지만 말이 하나도 안 통하는 인간들과 이 먼 전세보증금 나라, 외딴 섬까지 왔다. 잘나가는 척하는 아빠와 갸륵한 척하는 엄마의 커플사진을 찍어줘야 하지만 나는 차라리 그걸 견디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요즈음의 나는 정말이지 뉴스 중독이었다. 학기 중에는 수업 시간에까지 이어폰을 끼고 뉴스를 들어서 지적당한 적도 있었다. 교수는 내게 시국이 이러하니 이해는 하지만, 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신차 시국 타령은 변명이다. 나는 그야말로 뉴스에 중독돼 있었다. 중독을 들킨다는 건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더는 팬임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도 중독되는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다. 다른 사람들처럼 탈덕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언니 곁에 남은 사람이었다. 언니의 태도와 입장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걸 알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내 사랑을 거둬버리고 금융권 싶진 않았다. 섬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호텔로 갔다. 투 베드 룸이었다. 엄마는 내가 쓸 방을 열어보고 나쁘지 않네, 라고 말했다. 나쁘지 않은 방은 내 방이고 호화로운 방은 커플 방이다. 돈 쓰는 사람들에게 호화로운 방이 주어지는 건 당연하므로 불평할 생각은 없었다. 엄마는 거실에 있는 너른 소파를 보며 한껏 높아진 목소리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다행은 뭐가 다행이란 건지. 소파에 둘러앉아 이야기하길 바라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그러나 그것도 견디라면 견뎌야 할 일이다. 아빠는 거실에 있는 스피커를 만져보더니 곧바로 블루투스를 연결했다. 자기가 꽤 괜찮은 리스너라고 생각하는 아빠는 플레이리스트를 과시할 요량이었다. 그것도 예상한 일이었다. 아빠가 듣는 음악 중에선 내 귀에도 제법 괜찮게 들리는 곡들도 있지만, 말도 안 되게 짜증 나는 곡들도 물론 많았다. 엄마는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이고. 아, 그러니까 저 커플은 좋으면 뭐든지 공유하려고 한다. 내가 그들과 본질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이유다. 아빠는 볼륨을 높였다. 시부야케이, 피지카토 파이브, 아빠 차에서 지겹도록 들은 노래다. 어떨 땐 마치 아빠의 음성같이 들리는 노래들이 있다. 아빠는 그러니까 자기 사랑에 당당한 거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남들도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자신감이 부럽다. 나는 언니들의 음악을 설명해야만 했는데. 언니들이 데뷔했을 때 아빠도 인정한다는 듯 말했다. 그래, 뭔가 다르다. 다른 애들이랑은 다르다. 아빠는 선심 쓰듯 평가했었다. 언니들의 음악이 프로듀서들에 의해 만들어진 거라고, 그러므로 그 프로듀서들이 없다면 언니들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말도 나를 얼마나 아프게 했었는지. 프로듀서에게 당한 폭력을 고발하는 언니를 같은 그룹의 다른 언니들까지 외면하고, 언니만 빠지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 구는 그 언니들이 또 나를 얼마나 다치게 만들었는지. 고발하는 아이돌이라는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듯, 언니의 학폭과 스태프 갑질 문제를 더 깊고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언론. 언니는 본래 피해자였는데 갑자기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팬덤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언니가 가해자 같아 보이는 ‘언어들’을 사용한다고. 그 언어들이 뭔데? 아니, 학폭과 갑질이라는 말들은 또 얼마나 애매하고도 흐릿한데. 지난 정권과 언니를 괴롭힌 프로듀서가 결탁되어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뉴스 중독이 되었다. 특검이 발표할 때마다 나는 귀를 쫑긋 기울였다. 나도 안다. 그 사람의 추함이 드러난다고 해서 언니가 복권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언니는 버려진 사람이니까. 같은 멤버들과 팬덤에게까지. 나는 내 사랑을 거두지 않았다는 표시로, 저항의 의미로 언니 사진을 달고 다녔지만, 내 사랑을 설명하다 보면 오히려 언니가 더 많은 모욕을 들어야 했다. 친구들도 내게 말했다. 너는 너무 중독되어 있다고. 중독이란 비의지적인 거라고. 그런 오해를 일일이 풀고 다니기가 싫어서 나는 언니 사진을 집어넣어 버렸다. 드레스룸에서 여름 원피스로 갈아입고 나온 엄마가 갑자기 내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나는 팔로 얼굴을 가렸다. 아빠가 와이파이 너무 잘 된다!고 흥분돼서 떠들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실패를 예감했다. 뉴스를 보고 싶다. 여행을 와선 뉴스를 보지 않겠다는 다짐은 자꾸 무너졌다. 이젠 심지어 비행기에서도 와이파이가 터진다. 뉴스로부터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레스토랑에 저녁을 먹으러 가서, 부모님이 밤하늘을 구경한다고 나간 동안 뉴스를 켰다. 언니가 복권될 수 없다고 해도 그 인간은 망해야 한다. 그게 결국 뭘 증명할지는 잘 모르겠다. 언니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누군가는 알게 될지도 모른다. 특검이 압수수색을 하다 보면 프로듀서와 그들 집단의 비리가 결국 드러나고 말 테니까. 뉴스 화면에 괴이한 장면이 떴다. 어, 나는 나도 모르게 어, 하고 말했다. 경찰기동대가 진입하는 그 프로덕션 앞마당에서 사람들이 춤추고 있었다. 아이돌의 춤도 아니고 선동가들의 무용도 아닌 정말 이상한 몸짓이었다. 흰색 반소매와 청바지를 입은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손짓과 발짓을 맞췄다. 그 움직임이 왜 그토록 질서정연한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마치 필승파트라도 되는 양 반복하는 이상한 몸짓. 앵커가 말했다. ―이런, 꽤 질서정연하군요. 압수수색을 하러 들어가는 경찰기동대를 막아서는 몸짓패는 지난 정권과 결탁한 신흥 종교 집단이라고 했다. 그들은 프로덕션 앞마당에 모여 이상한 춤을 추며 경찰을 막아서고 있었다. 고작 이런 인간들 때문에 언니가 쫓겨났었나? 홀린 듯 뉴스를 보는데 아빠가 내 뒤에서 기척을 냈다. ―뭐야, 이거? 압수수색 방해하는 거야? 나는 습관대로 얼른 폰 화면을 껐다. 아빠는 내게 다가앉으며 뭐야, 말해줘, 라고 했다. 종교 집단이 와서 압수수색을 막아서는 거라고 하자 아빠는 한숨 쉬며 지랄들 하고 자빠졌네, 뇌까렸다. ―이 세상이 어디까지 망가지려고 이러는 거냐, 대체. 아빠는 내가 언니 옆에 남은 사람이라는 걸 모른다. 탈덕한 줄로만 알고 있다. 으레들 그러하니까. 아빠에게 한번 말해보고 싶었다. 우리 언니를 괴롭힌 인간들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어? 아빠가 오래전 자기가 대학생일 적엔 너바나가 곧 혁명이었다고 말한 적 있다. 당신에게 너바나가 혁명이었듯 나에겐 프로듀서를 고발하는 언니가 곧 혁명이었다고. 하지만 나는 말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빠지는 덕질사랑의 관점에서 보면낯설고도 매력적인 현상■ 작가의 말 박민정 작가의 소설 ‘나는 너에게 남은 사람’ 속 화자는 아직 ‘탈덕’(팬을 그만두는 행위)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가 머물고 있는 대상은 프로듀서를 고발하고 팬덤의 뭇매를 맞고 있는 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 어딘가 지금의 아이돌 업계와 닮아 있는 이 이야기에서 박 작가는 ‘조건 없는 사랑’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박 작가는 “아마 화자는 남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팬덤 속에서 사랑을 구축해나갔지만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켜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탈덕, 빠르게 끓어올랐다가 사라지는 덕후의 심정은 “확신과 주저함 사이에서, 자기가 쌓은 ‘궁정풍 사랑’의 성채를 방어하지만 또한 부수고도 싶은” 마음일 것이다. 지금의 팬덤 문화는 소설 속 화자의 아버지가 “너바나가 곧 혁명”이었다고 외치던 시기와는 분명 다르다. 박 작가는 “1990년대 팬덤의 마음을 갖고 있는 아버지가 ‘너바나’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전유하는 것과 딸의 마음이 다르고 딸은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양한 것을 사랑하며 살아왔지만 어떤 사람에게 빠졌던 적은 없어요. 사람을 대상으로 한정하는 ‘덕질’은 사랑의 관점에서 매우 낯설고도 매력적인 현상입니다.” 200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 작가는 소설집 ‘바비의 분위기’, 장편소설 ‘백년해로외전’ ‘호수와 암실’ 등을 펴냈다.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신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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