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정명훈은 지난달 20일 한국경제신문 아르떼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라 스칼라의 오랜 전통을 존중하면서 최상의 음악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덕관 사진작가 50대의 정명훈이 남긴 문장이 하나 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프로라도 정신과 마음만은 아마추어여야 한다.’ 70대에 또 한 번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그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이제 ‘그쪽’(아마추어)으로 많이 기울었다”고 했다. 20년의 세월을 지나 비로소 괜한 감정이나 사소한 일에 집착하지 않는 진정한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다. 지난 5월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차기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정명훈을 한국경제신문 아르떼가 만났다. 2오션
47년 역사의 세계 최고 오페라 극장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음악감독에 임명된 이후 언론사와 처음으로 한 단독 인터뷰다. 지난달 20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만난 그는 “평생 해외 어딜 가든 한국인이 주요 직책이나 배역을 차지하려면 적어도 현지인보다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온 것이 이젠 습관이 돼 ‘동양인 최초’ 같은 기록엔 오히려 무덤덤하다”고 했다완리 주식
.  ◇세상에 없던 길을 낸 음악가 정명훈은 개척자다. 모든 걸음이 대한민국 음악사에 없던 길을 냈다. 백인 남성 중심의 역사로 점철된 세계 지휘계에서 오로지 실력 하나로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등 최정상급 악단의 포디엄을 정복했고, 서른여섯 살 때 프랑스 파리의 명문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며 유황금성용가리
럽 클래식 음악계를 발칵 뒤집었다. 라 스칼라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건 음악가로서의 업적에 ‘이 시대 최고의 지휘자’라는 결정적인 훈장을 새긴 격이다. 라 스칼라 극장은 베르디, 벨리니, 로시니, 푸치니 등의 걸작이 초연된 ‘오페라의 성전’과 같은 곳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리카르도 무티, 다니엘 바렌보임 등 당대 일류 명장이 거쳐 간 극장으로도 잘 알려져예스코 주식
있다. 그가 2027년부터 공식 임기를 시작하는 음악감독직은 공연 레퍼토리 선정부터 단원 선발까지 모두 총괄하는 중책이다. “라 스칼라의 아버지를 넘어 ‘라 스칼라의 할아버지’가 된 기분이에요. 아버지는 아이들의 의견을 다 받아주기 어렵지만 할아버지는 뭘 하고 싶다고 하면 다 ‘예스’라고 말한 뒤 방법을 찾으니까요. 세계 최고의 악단이나야마토5
극장을 만들고 싶다는 피상적 목표보다는 그들의 오랜 전통을 존중하면서 최상의 음악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싶어요.” 정식 취임에 앞서 그는 오는 17일(서울 예술의전당), 18일(부산콘서트홀) 라 스칼라 필하모닉을 이끌고 내한 공연을 연다. 그가 생각하는 이 악단의 강점은 무엇일까. “이탈리아 하면 가장 먼저 ‘노래’가 떠오르잖아요. 라 스칼라 필하모닉은 전 세계에서 ‘칸타빌레’(노래하듯이) 느낌을 제일 잘 구현할 줄 아는 악단입니다. 베를린 필이 파워풀하다면 라 스칼라 필은 자연스럽고 더없이 아름다운 음색이 강점이죠.”  ◇인생은 ‘노래하듯 자연스럽게’ ‘노래하듯 자연스럽게’란 문구는 그의 인생철학과 맞닿아 있다. 라 스칼라와 정명훈의 첫 만남은 1989년으로 올라간다. 음악감독 선임 직후 공식 석상에서 라 스칼라를 두고 “36년간 사랑하다가 결혼한 가족”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그는 “첫 만남 때부터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정도로 마음이 강하게 통했다”며 “단순히 지휘하는 것을 넘어 단원 한 명 한 명에게 어떤 음악적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정명훈은 지휘할 때 악보를 보지 않는 ‘암보(暗譜)’로도 유명하다. 수백 쪽의 악보를 한 음표도 빠짐없이 외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다. “지휘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오로지 몸으로 음악을 표현해야 하잖아요. 팔과 몸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으로 보여줘야 해요. 하도 악보를 많이 들여다보고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하니까 저절로 외워지는 거지, 기계적으로 외우려고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정명훈은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하며 피아니스트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는 타고난 천재가 아니냐는 말에 거듭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누나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정명화와 함께 ‘정트리오’로도 활동한 그는 “우리 집에서 여섯째로 태어난 건 굉장한 행운이었다”며 “타고난 재주는 별로 없었다”고 했다. 여덟 살이 되던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줄곧 해외에서 생활했지만 정명훈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정체성을 ‘인간, 음악가, 한국인’으로 정의했다. 지금까지 세계 무대에서 정명훈이라는 이름 석 자를 고집해온 그는 여전히 아시아에서 연주할 때 마음이 가장 편하다고 했다. “평생 한국인으로서 깊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꼈어요. 과거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끌며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한국 지휘자로서 북한에 두 번이나 다녀온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에요.” 세계가 아는 이름을 가진 정명훈. 그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어쩌면 가장 그다운 대답이기도 했다. “별난 흔적을 남기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걸 바라지도 않아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워낙 엄격하고 박한 사람이라, 타인에게 좋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마저 욕심처럼 느껴지거든요. 그저 남은 생엔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조금이나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오직 그것만 바랍니다.” 김수현/조민선 기자 ※정명훈 인터뷰 전문과 기획기사, 화보는 ‘아르떼’ 매거진 16호(9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