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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뒤란이 완전히 지렁이 밭으로 변했어요. 호밋날에 찍힐까 조심해야….” 꿈틀대는 지렁이를 보면 악귀를 본 듯 소스라치던 그녀가 호미에 걸려 나오는 지렁이를 손으로 주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귀농 십여 년 만에 지렁이에 대한 시선이 바뀐 그녀의 변화가 반가워 대꾸했다. “누구는 지렁이를 증권프로그램
자연의 정원사라 부르던데?” 사실 그동안 우리는 지렁이나 땅강아지 같은 생물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던 황폐해진 밭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산에서 부엽토를 긁어 포대로 실어다 넣고, 아침마다 요강의 오줌을 쏟아붓고, 음식물 쓰레기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모아서 넣곤 했다. 그렇게 하기를 십여 년, 마침내 지렁이한라건설 주식
들이 우글우글 붐비는 옥토가 된 것. 지렁이는 각종 오물과 흙을 먹고 분변토를 토해내는 지구를 살리는 예술가가 아니던가. 오늘날 지렁이가 얼마나 귀한 동물인지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땅과 늘 접촉하는 농민들도 지렁이가 땅을 비옥하게 한다는 걸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대학생들이 지렁이를 살리려고 ‘지구대’(지렁이 구리딩증권
하기 대작전의 줄임말)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 4학년 학생 5명이 폭우나 폭염으로 길바닥에 나와 죽어가는 지렁이를 살리기 위해 재활용 목재로 보호소를 만들었다는 것. 그 보호소 안에는 비옥한 흙과 낙엽 등을 넣고 배수 시설까지 갖춰 ‘지렁이 임시 피난처’로 손색이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숟가락이나 포크, 얇은 밧줄 같은 구조 도구도 비치해 두었는데, 한길에 나와 죽어가는 지렁이들을 이 구조 도구를 이용해 보호소로 옮겨 살리는 방식이다. 그 지구대 소속의 한 학생은 누군가 지렁이를 구해 보호소 안에 넣어주는 장면을 떠올리며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실제 그렇게 해서 죽어가는 지렁이들을 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고 말했다.(‘한국일보’ 2025년 8월 21일) 이 갸륵한 일을 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다가 떠올린 인물이 있다. 『종의 기원』이란 책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박물학자이며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 그는 세계 역사에서 지렁이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그 중요성을 알린 최초의 학자이다. 다윈은 지렁이가 오물과 썩은 낙엽을 어떻게 흙으로 바꿔놓는지, 우리 발밑에 있는 땅이 지렁이의 몸을 통해 어떻게 순환되고 있는지를 연구했다. 다윈은 늘그막에 거실에다 큰 항아리를 들여다 놓고 그 안에 지렁이를 키우며 그 습성을 관찰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빈정거렸다. 유명한 학자가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 미친 짓을 하고 있다고. 그러나 옹고집쟁이 다윈의 지렁이 사랑은 멈출 줄 몰랐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그는 지렁이들이 낙엽을 잘게 갈 뿐 아니라 작은 돌까지 부수어서 똥으로 배출해 건강한 무기질 흙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지구의 살갗인 흙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을 새롭게 열어놓았다. 찰스 다윈은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이란 책도 냈는데, 이 책은 지렁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우리 말로도 번역되어 있다. 다윈이 지렁이를 쟁기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쟁기는 사람의 발명품 가운데 가장 오래된 소중한 것에 속한다. 하지만 사람이 지구에 살기 훨씬 오래전부터 지렁이들은 땅을 규칙적으로 쟁기질해 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땅을 갈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문장은 소위 고등동물인 인류의 생태적 각성을 일깨우고 있어 텃밭에 들어갈 때마다 경전 구절처럼 되뇌곤 한다. “세계사에서 이 하등동물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일을 한 동물들이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고진하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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